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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관리자 2019-10-07 15:51:42 조회수 12

··3국 최고의 복날 음식


복날’, ()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

삼복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이 있다. 더위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 밥알 하나의 무게조차 버겁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복날이 유난히 더운 건 이때가 불()의 기운을 가진 여름철 양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라서다.

하지만 조상들은 덥다고 지쳐 누워만 있지 않았다. 몸의 기를 보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산과 계곡을 찾아 하루를 쉬며 재충전했다.

중국과 일본에도 우리의 복날과 비슷한 날이 있어 특별한 음식을 해먹는 풍습이 전해 온다.

··일 복날, 닮은 듯 서로 다른 세 나라의 복날 유래와 음식을 알아본다.

먼저 우리나라의 복날이다.

 

차례 지내는 날더위 이기는 음식 먹는 날

우리나라의 복날은 중국에서 왔다. 중국 진()나라 때 시작된 풍습이 들어와 굳어진 걸로 추정된다. 

중국 진(() 때 복날은 철이 바뀔 때마다 사당이나 조상 묘에 차례를 지내는 중요한 날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날 사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이날 왜 꼭 개를 잡았던 걸까? 논어에 제사에는 반드시 개고기를 쓴다고 기록돼 있다. 개고기는 당시 중국에서 제사상에 올릴 만큼 중요한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점으로 미뤄 볼 때 중국에서 차례 날이었던 복날, 제사 음식을 만들려고 개를 잡던 풍습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더위를 이기는 날, 보양 음식 먹는 날의 의미로 민간에 퍼진 듯하다.



 

궁도 민가도 즐긴 가장 오래된 삼복 음식은 팥죽’?

지금은 복날 음식으로 삼계탕을 손꼽지만, 개장국은 조선 시대 중요한 보양식이었다. 주로 개를 삶아 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얼큰하게 끓였는데 복날 개장국 풍속은 여러 세시기(歲時記)에도 기록돼 있다.

재미있는 건 고려 말 기록까지는 삼복에 개고기 먹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팥죽을 즐겼다는데 그러고 보면 가장 오래된 복날 음식은 팥죽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때 개고기가 성행한 것과 관련해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유교와 공자를 숭상한 시기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공자도 평소 개고기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민간에까지 큰 저항감 없이 정착됐다고 설명한다. 민가와 궁중에서 동지뿐 아니라 삼복 때마다 팥죽을 쑤어 먹은 건 붉은 팥의 기운으로 더위를 이기고 건강하길 바란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풀이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개장국을 삼가고 햇병아리를 잡아 인삼과 대추, 찹쌀 등을 넣고 삼계탕을 해 먹었다. 양반들도 체면을 중시해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삶아 개장국과 비슷하게 끓인 육개장을 즐겼다.

서울 사람들은 민어 매운탕을 좋아했다. 제철 생선인 민어를 고추장으로 간하고 애호박과 파, 마늘, 생강 등으로 매콤하게 끓여내면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임금님은 복날 육개장과 영계찜을 즐기셨다. 윤숙자 소장은 제철 오이를 다져 빚은 만두, ‘규아상이나 깨국탕, 떡수단, 복분자 화채, 열무김치, 참외, 수박도 임금님의 복날 음식이었다고 말한다.


[사진 설명=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떡수단, 개장국, 팥죽, 삼계탕]


복날은 재충전의 날산과 계곡에서 복놀이

조상들은 뜨끈한 보양탕 한 사발을 들이킨 뒤 산과 계곡을 찾아 복놀이를 했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아이들과 부녀자들은 과일을, 남자들은 따로 싸 간 술과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삼청동 성조 우물물을 먹으며 계곡 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했다고 한다. 이날 부녀자들이 약수에 머리를 감으면 풍이 없어지고 부스럼이 낫는다고 믿었다.

복날 날씨로 가을 수확을 미리 점치기도 했다.삼복에 비가 오면 전남과 부산 지역에선 농사비라며 반겼고 강원 지역에선 흉년이 들 거라고 여겼다.